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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 선배'가 내 목숨을 살렸다.(45회 정양섭)

 아래 글은 2004년 북경에서 초대 在中韓人會長을 지내신 55회 신영수 선배께 들은 이야기로 '사자후' 창간호에 실렸다고 하였는데 '사자후' 창간호가 없어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2년 뒤인 2006년 모교에 들렀다가 '중동 100년사 편찬팀'에 문의를 했더니 마침 편찬팀에 창간호가 있어, 이념조차도 장애물이 될 수 없는 우리 중동선후배 사이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동문 여러분과 함께 읽고 싶어 올립니다. (67회 이명학 씀)

 

 

     <인민군>선배가 내 목숨 살렸다. -- 6.25때 포로로 잡혀 죽음 직전 풀어줘

 

                                                                                     정양섭/ 전 메디칼 인덱스사 상무 45회

 

 나혼자 치른 전쟁도 아니요, 또 자랑스런 별을 단 장군의 무용담도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바풀떼기 하나 달지도 못한 쫄병으로 참전했던 전쟁얘기를 그것도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을 네번이나 보낸 지금 새삼스럽게 하는 것은 혼자만의 기억으로 지니기엔 中東人으로서 너무나 고맙고 잊을 수 없는 얘기이기에 당시를 더듬어 본다.

1950년 5학년(당시는 중학교 6년제)에 진급한지 석달이 못되어 우리는 6.25를 맞았다. 여기서 우리라 함은 45회 동창을 말한다. 말이 5학년이지 햇수로는 만 4년여를 中東에서 배웠으면서도 우리 45회는 떳떳한 졸업장 한번 제대로 타 보지 못한 한맺힌 동창생들이다.

때문에 다분히 동병상련격인 심리이기는 하되 43회나 44회, 46회에 비해 훨씬 강한 결집력을 지닌 것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총 200여명 중 생존자로 확인된 80여명 전원이 관혼상제 등 길흉사와 동창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각설하고 1951년 3월 제주도 훈련소에 입대한 나는 한달간의 훈련을 마치고 부산 보충대, 대구 보충대를 거쳐 4월 중순쯤 강원도 어느 산골 9사단 직할 보충대에 배치되었다.

그곳에서의 일로 기억에 남는 것은 계속되는 불침번 근무로 잠은 부족했지만 밥만은 배불리 먹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행운은 잠시였고 채 10일이 못되어 기상과 동시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사단이 포위되었다는 얘기였다. 50만 대군이 내려왔다는 중공군의 2차 춘기공세였다. 총 한번, 전투 한번 못해본 19살의 이등병이 겪었던 참담한 전쟁 얘기를 하라는 것이 아니기에 포위망안에서의 잡다한 사연은 약하거니와, 전후사정도 모른 채 고참병들의 뒤만 따라 도망다니던 5일만에 나는 저들의 따발총에 발목을 관통당했다.

날이 밝자 요란한 총격전 끝에 10여명의 아군 포로와 함께 나도 마당에 끌려 나왔다.

모든게 끝난 것이다. 전투 중인 적지에서 걷지도 못하는 포로가 살기를 바란다는 것은 동화 속에서나 있음직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던가. 지옥에서 부처님을 만났던 것이다.

이제 마지막이다 싶었을 때,

"야 임마!죽기 전에 네 소개나 해 봐! 너 집이 어디야!" 하고 인민군 군관이 물었다.

"서울입니다."

"서울? 학교는 어디 다녔어!"

"중동입니다."

순간 그는 깜짝 놀라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 후 남들의 눈길을 피해 그 군관이 다시 나한테 다가왔다.

"중동다녔다는데 몇 회요?"

"45회 정도 됩니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2년 선배구만."

우리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각기 남과 북의 군복을 입은 둘이는 이내 눈시울을 붉히며 손을 꽉 잡았다.

그 선배는 내일쯤 자기네들이 후퇴할 것 같으니 숲속에 숨어있다 살아서 돌아가라고 했다.

40년의 세월이 흘러 그 선배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할 수 없지만 그때처럼 中東과의 인연이 고맙고 대견스러웠던 일은 없었고 또 다시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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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東人!
    자랑스럽습니다. 
    이념을 넘어 학연으로 이어지니 .... 
    그 선배님도 잘 사시길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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