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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학교 중동 (44회 시인 강민 : 본명 강성철)

우리가 늘 듣던 '중동은 깡패학교'라는 세간의 비평에 대해 답을 해야할 가치도 느끼지 못했지만 한편으로 왜 이런 일반 사람들의 비평이 생기게되었는지 답답하고 궁금했는데  강민선배님의 이 글은 그에 대한 명쾌한 답이라 생각합니다. (67회 이명학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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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과 감격   ㅡ1945년, 나의 8, 15

강 민

1945년, 나는 중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그 해 4월 서울장충국민하교를 졸업한 나는 상급학교로 진학해야 할 텐데, 어느 학교를 지망해야 할지 몰라 그저 진학 의사만 담임선생에게 전하고 침묵하고 있었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아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것만 신통해 할 뿐, 어느 학교에 가라고 하실만한 지식이 없었다. 아버지는 고아로 자라 자수성가한 분으로, 독학으로 한문과 일어를 겨우 해독하셨고 어머니는 무학이셨다.
하루는 담임선생이 나를 불러 상급학교 진학 지원서를 써 주셨다. <경기중학교>였다. 전국의 수재들이 모인다는 이 학교에 대해 나는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후, 통지서가 왔다. 그 때는 1차로 서류심사를 하고 합격자에 한해 2차 필기시험을 볼 수 있었다. 나는 1차 시험에서 불합격이었다. 호별세(戶別稅 : 지금의 재산세) 몇 등 이하는 이 학교에 다닐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튿날 학교에 가서 그것을 담임선생께 드렸다. 선생은 그것을 보시고 먼저 자기가 실수했노라면서 2차로 갈 수 있는 학교에 지원서를 써 주셨는데, 거기가 <중동학교>였다. 이 학교는 설립자와 교장이 백농 최규동 선생이셨는데, 입학해 보니 그때도 그 분은 수학을 가르치고 계셨다. 이 학교에는 나처럼 가난한 학생들이 많았다. 그리고 최 선생이 <최 대수>로 불리고 또 한 분 선생이 <안 기하>로 불리는 수학의 대가란 것도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리고 또 이상하게도 다른 학교와 달리 이 학교에는 일본인 선생이 한 사람도 없었다. 학교명도 <중학교>가 아닌 그냥 <학교>였다. 그 이유는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 무렵, 중동은 깡패학교로 유명했는데, 이것은 나가서 혹시 일본인 학생과 싸우다 맞고 오면 오히려 상급생이나 암암리에 체육선생에게 혼이 나는 이상한 교풍(校風) 탓이었다. 은연중에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항일정신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총독부에서는 요시찰학교래서 <중학교> 승격을 시키지 않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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